장애인 복지 천국의 역사

(미국)뉴욕대 러스크 재활병원

Alina King1004 2023. 1. 5. 17:11

1946년 미국 뉴욕대 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 앞으로 수백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봉투 속에 수표를 동봉한 편지가 많았다. 회사원과 주부,은퇴자,죽음을 앞둔 할머니 등 평범한 사람들이 재활병원 건립 기금으로 써달라며 수표를 보낸 것이다. 몇몇 기업가는 원하는 만큼 금액을 적어 사용하라고 아예 백지 수표를 넣었다. 당시”월가의 큰 손”아라 불렸던 금융 재벌 버나드 바루크를 비롯해 영화와부동산 투자로 거부가 된 조지프 케네디 등이 헌신적으로 모금 운동에 참여했다.끊이지 않는 기부 행렬 덕분에 세계 최고의 재활 전문 병원인 러스크 재활병원이 1951년 뉴욕 맨해튼에 새워졌다. 그 이후로 러스크 병원은 세계재활기금을 조성하였고, 세계 100여 개국의 의사와 치료사를 초청해 교육하면서 재활의학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 재활병원 건립이 절박했던 데는 이유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아시아와 아프리카,유럽 전선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대거 귀환했는데, 이들의 정신적*신체적 부상이 매우 심했기 때문이다. 4년이 넘는 참혹한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을 죽여야 했던 죄책감과 공포로 정신 분열과 실어증 같은 정신 장애를 앓게 된 사람을 포함해 부상자가 67만 명이 넘었다.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내과의사 하워드 러스크박사는 부상당한 군인에게서”침상에 누워 거미가 집을 짓는 걸 바라보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그리고 행동에 나선다. 러스크 박사는 아서 설즈버거 뉴욕타임즈 회장에게 요청해 재활 치료와 병원 건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칼럼을 장장20년 동안 [뉴욕타임즈]에 연재 했다.”의사들이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을 때 재활 치료는 시작된다”로 요약되는 그의 주장은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고 병원 건립은 사회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한편으로 러스크 박사는 물리 치료와 심리 치료를 기본으로 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상이군인들의 재입원을 획기적으로 낮추었지만 동료 의사들은 그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직 재활의학은 개념이 분명치 않던 시절이었다. 리스크 박사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장애환자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연구를 지속해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안에 ‘물리치료 및 재활의학 연구소’를 설립했고 이는 지금의 러스크 병원이 되었다.